말리초 바카 발렌수엘라 Malicho Vaca Valenzuela
© Christophe Raynaud de Lage_Festival d'Avignon
연출가 말리초 바카(Malicho Vaca)는 팬데믹 봉쇄 기간 동안 컴퓨터 앞에 앉아 산티아고 시민들의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칠레 수도의 중심이자 모든 집회와 시위가 발발하는 활기찬 동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민들의 증언이 쌓여가면서 소박한 개인 연구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어느새 정체를 규정할 수 없는 독창적인 하나의 무대적 오브제(scenic object)로 변모했다.
<기억의 저편>은 디지털 플랫폼을 섬세하고도 매혹적으로 활용하는 ‘움직이지 않는 여정’이다. “드넓고 푸른 하늘 아래 누구나 역사를 읽어낼 수 있지만, 정작 땅속에 무엇이 묻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나라”에서 연출가는 기꺼이 기억의 대지를 파고든다. 그는 디지털 지도 위를 단 한 번 클릭하는 것만으로도 미스터리한 사랑의 흔적과 억눌린 혁명의 기억,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역사의 파편들을 생생하게 발굴해낸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매우 섬세하고도 정치적인, 동시에 한없이 친밀한 다큐멘터리 에세이를 마주하게 된다. 작품은 지도 위 마법 같은 장소들에 초점을 맞추며 거대한 감정적 지형도를 그려낸다. 도시와의 관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상이한 기억 속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 연결된다.
그리고 작품은 우리에게 나지막이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게 되면 우리의 흔적은 어떻게 될까? 우리의 목소리는 거리 위에, 혹은 외부 기억장치의 외로운 폴더 속에 남게 될까? 우리가 더 이상 여기 없을 때, 구글(Google)은 우리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게 될까? 우리는 다시 서로를 만나고, 서로를 만지며, 우리가 바라는 진정한 현실을 함께 복원해낼 수 있을까?
칠레의 예술가로 지난 15년간 작가, 연출가, 배우로서 연극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지금까지 여섯 편의 희곡을 집필했으며, 현재 새로운 프로젝트의 창작에 몰두하고 있다.
그의 작업은 성적 다양성과 젠더, 인권 등 다채로운 주제를 관통한다. 또한 라틴아메리카의 서사와 기억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 그리고 자전적 글쓰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확장해왔다.
다양한 기술적 형식을 섬세하고도 감각적으로 다루는 그의 작업 방식은 관객이 창작 과정을 직접 마주하도록 만든다. 그는 스스로 취약한 위치에 서서 자전적 서사를 써 내려가는 동시에, 수많은 혁명의 실패로 점철된 대지의 역사와 개인의 삶을 정교하게 교차시킨다.
*쉬운 글은 공연에 대해 알기 쉽게 쓴 글이에요. 모든 관객이 공연을 더 잘 이해하고 즐길 수 있도록 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