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모르는 사람과 감각적으로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감각의 가능성을 질문하며 작품 창작을 시작했다.
언어적 의사소통 없이도 행위자의 신체 감각이 보는이에게 즉각적으로 전이되는 현상을 포착하고 작동시킴으로서 원형의 객석에서 공동의 신체 감각을 형성하고자 한다.
작품내용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서 볼 수 있는 무용수의 움직임은 주로 일상의 경험을 통해 근육에 저장된 감각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예를 들면, 의자 밑으로 불쑥 지나가는 물체를 피하기 위해 다리를 들 때, 역한 냄새가 진동하여 숨을 오래 참아야 할 때, 손이 잘 닿지 않는 신체 부위를 긁을 때, 휘파람을 한 번에 잘 불기 위해 입술을 오므릴 때, 배가 아프도록 웃을 때 사용되는 근육의 감각처럼 작품의 움직임들은 모든 사람이 이미 알 법한 근육의 감각에 기인하고 있다.
공연 전반에서 무용수들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과 불규칙한 리듬을 가진 움직임, 일상적이지 않은 호흡 패턴 등 근육의 감각적 재료를 사용하여 감각의 전이를 유도한다. 관람객은 낯선 불편감, 답답함, 간지럼 등의 특정한 정동(情動, affect)이 발생됨을 느낀다. 관객은 무용수의 행동에 직접 감응(感應)하거나 다른 관객의 반응에 동감함으로써 신체 감각을 통해 교감하고 이내 다른 사람과의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알아차리게 된다.
안무가
황수현
감각과 인식의 틈에서 발생하는 신체현상을 탐구하는 안무가
안무가 황수현은 퍼포밍(Performing)과 관람행위 사이에서 신체 경험이 작동하는 방법에 중점을 두고 감각과 인지에 대해 깊이 탐구해왔다.
대표작으로는 <I want to cry, but I'm not sad(2016)>,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2019)>, <검정감각(2019)> 등이 있으며 2019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초연한 <검정감각>은 한국춤비평가협회가 수여한 ‘2019 베스트 작품상’을 수상했다.
영상제작 | 스튜디오엽 총 디렉터 | 엽태준 촬영감독 | 정지웅 1번 카메라 | 정지웅 2번 카메라 | 박정우 3번 카메라 | 강영훈 지미집 | 이승주, 박진섭 달리 | 장성영 편집 | 정지웅, 엽태준 색보정 | 정지웅
황수현
안무자 황수현은 안무와 퍼포밍(Performing)를 구심점으로 두고 활동하고 있으며 프로젝트 멤버는 매 작업마다 새롭게 구성된다. 모든 구성원이 제작 전 과정에 참여하는 유연한 창작 공동체를 지향한다.
황수현의 팀은 공동의 예술적 성장을 위해 서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창작환경에 대해 자문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작업 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공연사진 1/10ⓒ옥상훈
공연사진 2/10ⓒ옥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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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사진 10/10ⓒ옥상훈
황수현 연출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는 퍼포머들의 가려진 얼굴만큼이나 서사가 없다. 대화도 독백도 내레이션도 없는 공연에서 퍼포머들의 얼굴에는 머리카락이 덮여 있어 퍼포머 개인 혹은 그들이 맡은 ‘배역’의 내면에 대한 정보가 지워져 있고, 그들의 동작은 감정이나 서사를 재현하는 춤을 닮아 있지 않다. 황수현은 <I want to cry, but I’m not sad>(2016)와 <우는 감각>(2018) 등을 통해 지난 몇 년간 슬픔이란 감정과 엮여 있지 않은 눈물을 무용수들의 신체 감각과 움직임으로 기술하였다. 서사와 슬픔의 반응으로서의 눈물이 아닌 다양한 신체 감각과 움직임으로 흐르는 눈물을 통해서 감각과 감정의 관계성을 탐구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는 서사뿐만 아니라 전작과 달리 괄호 쳐진 슬픔/감정과 빈 괄호로서의 눈물/감각 또한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미세한 단위의 정박과 변박을 따르는 움직임에서부터 근거리와 원거리를 오가는 호흡을 비롯해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이 침묵과 비명이 뒤섞여 일그러진 퍼포머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해당 공연에서 연속되는 퍼포먼스가 과연 어떤 구상(서사)과 추상(감정과 감각)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추론의 가능성이 관객에게 불투명한 것이다. (중략) - 김유진
‘초연결’의 휴머니즘은 사실 황수현 안무에게서 괄호 쳐질 수 있고, 무용수는 개방된 범-생명성 — 특정하게는 “여성들은 다 연결되어 있다” 라는 명제 하의 어떤 젠더적 특성 — 의 자기전개를 함께 하는 에이전트 혹은 액탄트[actant] 역할로 바라볼 수 있다. 왜 꼭 초연결이 인간의 몫이어야 하는가. 즉 탈휴먼화된 초연결은 곤충이 지구 자기장을 내비게이션 망으로 활용한다거나 숲의 어머니나무들이 뿌리통신-인터넷으로 다음세대 나무, 손자세대 나무와 정보 및 물류 교환을 한다거나 하는 예들이 있다. 신화적 내러티브로 옹호되어온 이러한 분과생물학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로는 반딧불이와 고래가 있다. 빛과 노래.. 둘 다 공명이다.
위의 이러한 초연결의 내력을 염두에 두고, 황수현 안무의 ‘다른 연결’을 보자. 그렇다면, 1차적으로 사람 몸과 몸을 통해 운동감각과 인지능력 사이의 사이질[interstitium]에서 일어나는 듯한 연결과 2차적으로 여성과 여성의 사이에서 비매개적인 본능의 연결로 펼쳐보일 수 있다. 이 단계적 연결 방식을 <검정감각>에서는 눈을 감고 비시각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으로 실험하고,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거기서 좀 더 증폭되는 버전 혹은 미술관 공간에서의 상호동기화 버전으로 변주한 느낌은 있는데, 기본적으로는 큰 공통의 기조 위에 있다고 할까.
무용수들은 모종의 짜여진 안무 얼개를 소화하기는 하나, 자신의 말 배우기 이전 단계의 본능의 안테나에 기대면서 서로 그 안테나 송신과 수신의 과정 — 마치 저 알려지지 않은 pre-history에 잠복해 있는 소위 ‘곤충-인간’[insect-men]처럼 우주적인 과정 — 을 동시적으로 진행한다. 잠들기 직전 어둠 속의 휴대폰 불빛, 그 블루라이트에 의해 침범당하고 손상당한 신경으로는 안 될 것 같은 퍼포먼스이다. 신-경, “신의 길”이라는데 그게 예민한 정도가 아니라 서로 비매개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것이니. (중략) - 안무비평, 김남수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는 원으로 배치된 관객 사이사이에 피드백 루프로 미세하게 움직임을 확장하는 세 명의 퍼포머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감각하는 과정으로 구성된다. 제목은 사실 모든 것을 말하고자 한다. ‘나는 그 사람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에서 ‘나’는 관객을 그리고 ‘그 사람’이 퍼포머를 의미한다면, 퍼포머의 감각을 나는 그대로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하는 것으로, 퍼포머와 관객은 일종의 거리와 지연을 반영한다. 이를 퍼포머와 퍼포머 사이로 바꾸어볼 수도 있겠지만, 세 퍼포머 사이에서는 지연에 따른 간극이 미세하게 반영되는 정도이다. 또는 그 간극은 하나의 거대한 흐름(루프)을 형성하는 단위에 속하게 된다. (중략) - ARTSCENE, 김민관